해제
정종로(鄭宗魯, 1738~1816)는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앙(士仰), 호는 입재(立齋) · 무적옹(無適翁)이며, 상주 출신 문인이다. 대제학 정경세(鄭經世)의 6대손이며, 예천의 박손경(朴孫慶), 안동의 이상정(李象靖), 대구의 최흥원(崔興遠) 등, 영남삼로(嶺南三老)를 모두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고, 이상정의 문인록인 「고산급문록(高山及門錄)」에 이름이 있다. 50대 이후에는 영남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여러 번 관직에 천거되어 광릉참봉, 의금부도사, 강령현감, 함창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정종로의 사위가 최흥원의 손자 최식(崔湜)이다. 최흥원(崔興遠, 1705~1786)은 1786년 8월 그의 나이 82세에 사망하였다. 정종로는 이에 대해 1781년에 이상정, 1782년에 박손경이 사망한 후에 최흥원이 연이어 사망하니 학문의 연원이 끊어져서 매우 슬프다고 하였다. 최흥원의 학문과 그의 효성을 기리고 있다.
출처
경주최씨칠계파종중, 『백불암선생언행록』, 대보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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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