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
정종로(鄭宗魯, 1738~1816)는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앙(士仰), 호는 입재(立齋) · 무적옹(無適翁)이며, 상주 출신 문인이다. 대제학 정경세(鄭經世)의 6대손이며, 예천의 박손경(朴孫慶), 안동의 이상정(李象靖), 대구의 최흥원(崔興遠) 등, 영남삼로(嶺南三老)를 모두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고, 이상정의 문인록인 「고산급문록(高山及門錄)」에 이름이 있다. 50대 이후에는 영남 지역을 대표하는 학자로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여러 번 관직에 천거되어 광릉참봉, 의금부도사, 강령현감, 함창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정종로의 사위가 최흥원의 손자 최식(崔湜)이다. 이 편지에는 심부름꾼에게 편지를 받으니 너무 기쁘다고 하였고, 정종로 등이 산장(山庄)에 모여 학문을 논의했다고 하니 여러 가지로 위로가 되었다고 하였다. 손자 최식은 요즘 소학을 읽고 있는데, 정종로가 이끌어준다고 하니 기쁘지만, 제술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과거공부에 전력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즉, 최흥원은 과거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출처
경주최씨칠계파종중, 『백불암선생문집』, 대보사, 1999
키워드
정종로최식소학과거시험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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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