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
조선적(1697~1756)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길(仲吉), 호는 치재(恥齋)이다. 영천 출신으로 함께 학문을 강론한 도우(道友)였다. 이 편지에서는 지난 번에 조선적과 이상정이 최흥원을 찾아왔는데, ‘심법(心法)의 오묘함’, ‘하학(下學)의 요체’, ‘가르치는 법에 차례가 있음’, ‘사장(詞章)의 해로움’ 등에 대해 강론하였고, 이에 대해 함께 논의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최흥원은 팔공산의 선조의 정자와 부인동, 동화사 등을 유람하였는데 조선적과 함께 하지 못하여 슬펐지만, 다음에 조선적 등 몇 명과 강학을 하자고 이상정과 약속을 했다고 한다. 조선적과는 이 편지를 포함하여 5번 편지를 보냈는데, 아들에게 스승이 되어주기를 원하는 내용 및 강학활동, 교유 등의 내용이 있다.
출처
경주최씨칠계파종중, 『백불암선생문집』, 대보사, 1999
키워드
조선적이상정팔공산부인동동화사
소장정보
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