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勝日淸遊服旣成。攀崖緣壁入山城。數饍官厨紅露送。此時花樹正含情。
해제
하시찬이 팔공산 가산바위(가암)에서 서창오(徐昌五, 자 덕겸(德兼))를 대신하여 서유병(1748~1799)에게 올린 시이다. 가암의 경치를 읊으면서, 서유병이 음식과 술을 보내 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시의 형식은 칠언절구이며 1제 1수로 이루어져 있다. 하시찬은 자가 경양(景襄), 호가 열암(悅菴), 본관이 달성이다. 하운서(夏雲瑞)의 5대손이자 하점우(夏霑雨, 1630~?)의 고손자이다. 그리고 인촌 우재악(1734~1814)과 경호·명성당 이의조(1727~1805), 심재·성담 송환기(1728~1807)의 제자이다. 청년기부터 중년기까지 가난함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786년(정조 10)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었고, 향촌에서 학문에 힘썼다. 1789년(정조 13)에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의 선산 아래에 독무암서(獨茂巖棲)를 짓고 공부하며 제자를 길렀다. 가암은 칠곡 가산산성의 성벽 사이에 있는 편평한 바위이다. 서유병은 자가 이백(彜伯), 본관이 달성이다. 1783년(정조 7)에 생원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하시찬이 이 시를 지을 당시에 서유병은 칠곡 부사로서 근민헌(近民軒)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민헌은 경상도 의흥현(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 관가의 건물이다.
출처
db.itkc.or.kr/inLink?DCI=ITKC_MO_1129A_0020_010_0600_2013_B102_XML
키워드
가산 바위(가암개산암)가산산성(架山山城)팔공산(공산)서창오(徐昌五)서유병(徐有秉)
소장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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