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小有新亭揭舊號。箕裘能繼百年家。𪆽飛漠漠寒潭凈。想像當時杖屨過。
해제
하시찬이 송담 채응린(1529~1584)의 소유정 시에 차운한 시이다. 새로 지은 정자에 걸린 소유정의 옛 현판을 보며, 채응린의 자손들이 선대의 유지를 잘 이어가고 있음을 표현했다. 소식(1036~1101)의 적벽 선유를 떠올리며, 금호강의 밤경치와 선유하는 즐거움을 표현했다. 시의 형식은 칠언절구이며 1제 1수로 이루어져 있다. 하시찬은 자가 경양(景襄), 호가 열암(悅菴), 본관이 달성이다. 하운서(夏雲瑞)의 5대손이자 하점우(夏霑雨, 1630~?)의 고손자이다. 그리고 인촌 우재악(1734~1814)과 경호·명성당 이의조(1727~1805), 심재·성담 송환기(1728~1807)의 제자이다. 청년기부터 중년기까지 가난함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786년(정조 10)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었고, 향촌에서 학문에 힘썼다. 1789년(정조 13)에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의 선산 아래에 독무암서(獨茂巖棲)를 짓고 공부하며 제자를 길렀다.
소유정은 채응린이 1561년(명종 16)에 금호강 강가에 지은 정자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에 금탄 채선길(1569~1646)·양전헌 채선견(1574~1644)에 의해 복원되었고, 1673년(현종 14)에 방화로 다시 소실되었다. 한편 채응린은 1561년(명종 16)에 소유정과 함께 압로정을 지었다. 압로정은 정유재란 때 소유정과 함께 소실되었다가, 1655년(효종 6)에 복원되었고, 1673년(현종 14)에 방화로 소유정과 함께 소실되었가, 1796년(정조 20)에 다시 복원되었다. 즉 소유정은 1673년(현종 14)에 방화로 소실되었다가 복원되지 못했지만, 압로정만 복원된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이 시의 1구에 나오는 ‘新亭’은 압로정을 의미한다.
출처
db.itkc.or.kr/inLink?DCI=ITKC_MO_1129A_0020_010_0870_2013_B102_XML
키워드
소유정압로정(狎鷺亭)금호강(琴湖江)채응린(蔡應麟)(송담(松潭)탄은(灘隱))인천채씨(仁川蔡氏)
소장정보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학술정보원,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한동대학교 도서관, 호서대학교 중앙도서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