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
최화진이 최우진(1740~1794)의 북계 이거를 기록한 글이다. 최우진이 평소에 학문에 뜻을 두었는데, 한날 고서를 끼고 아들과 질부를 이끌고 북계정사에 들어갔다고 이 글에 적혀 있다. 최화진은 자가 사구(士久), 호가 칠실(漆室), 본관이 경주이다. 육와 최흥건(1712~1769)의 아들이자,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의 조카이다. 최흥원과 대산 이상정(1711~1781)의 제자이며, 입재 정종로(1738~1816)와 교유했다. 최우진은 자가 의중(毅仲)·사의(士毅), 호가 석간(石澗), 본관이 경주이다. 시재 최흥점(1709~1771)의 친아들이자, 긍와 최흥후(1717~1799)의 사자(嗣子)이며, 최화진의 종형이다. 그리고 이상정의 제자이다.
한편 북계는 최동집(1586~1661)과 관련이 있는 장소이다. 최동집은 자가 진중(鎭仲), 호가 대암(臺巖), 본관이 경주이다. 1644년(인조 22)에 명나라가 멸망하자 팔공산 부인동(夫仁洞)(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으로 들어가서 농연 위에 농연정을 짓고 평생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최동집의 사후 1750년(영조 26) 봄에 최흥원이 농연 위에 북계정사를 마련했다.
출처
book.ugyo.net/viewer/view?itemId=ACKS_MT#node?depth=5&dataId=ACKS_MT_09000068_0020_0010_0020_000010
키워드
북계(北溪)(북계정사)최우진(崔宇鎭)(석간(石澗))곡굉(曲肱)학문
소장정보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국립경국대학교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한국국학진흥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