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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최흥립이 임술년 음력 윤7월 16일에 대암 최동집(1586~1661)의 <壬戌秋七月旣望。與諸友。泛舟琴湖。次菜琴灘(先吉)韻>에서 '秋’ 자를 차운한 시이다. 금호강의 가을밤 경치가 옛날에 선조들이 금호강에서 선유하던 시절과 똑같다고 표현했다. 시의 형식은 칠언절구이며 1제 1수로 이루어져 있다. 최흥립은 자가 산보(山甫), 호가 천옹(喘翁), 본관이 경주이다. 초명이 흥교(興敎)이다.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당내 사람들과 백일계(百一契)를 조직하여, 백세(百世) 흘러가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치 말자는 뜻을 표방하여 화목을 도모했다. 최동집은 자가 진중(鎭仲), 호가 대암(臺巖), 본관이 경주이다. 1622년(광해군 14) 음력 7월 16일에 금호강에서 금탄 채선길(1569~1646) 등과 선유하면서, 채선길의 시에 차운하여 소식(1036~1101)의 적벽 선유를 떠올리는 시를 지었다. 1644년(인조 22)에 명나라가 멸망하자, 팔공산 부인동(夫仁洞)(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으로 들어가서 농연 위에 농연정을 짓고 평생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출처
nl.go.kr
키워드
금호강최동집(崔東㠍)(대암(臺巖))임술(壬戌)청추(淸秋)
소장정보
국립중앙도서관,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대구가톨릭대학교 중앙도서관,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영남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등
기타
崔東㠍, <壬戌秋七月旣望。與諸友。泛舟琴湖。次菜琴灘(先吉)韻>, 『臺巖集』 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