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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류동준이 기묘년 음력 1월 15일에 동계정에 대해 적은 기문이다. 작성 연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1900년대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류동준은 본관이 풍산으로, 임재 류규(1730~1808)의 5대손이자, 석호 류도성(1823~1906)의 족질이다. 동계정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에 있는 건물로, 1910년(순종 4)에 동계 최주진(1724~1763)의 자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동계정을 지을 때에 동산서원(東山書院)의 자재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동산서원은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을 배향했던 서원으로,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 최주진은 자가 공보(慶州), 호가 동계(東溪)·동계처사(東溪處士), 본관이 경주로, 최흥원의 아들이다. 동계의 경치를 사랑하여, ‘동계’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그리고 동계 가에 집을 지어, 한가롭게 쉬면서 공부하는 곳으로 삼았다. <동계정기>에 따르면, 동계의 물줄기는 대암(臺巖)에서 발원하여, 검덕산(儉德山)과 황사산(皇師山)의 계곡물과 함께 흘러 내려가다가, 십 리도 안 되어 동계정의 동쪽에 이른다. 검덕산은 칠계(옻골)의 동쪽에 있다. 동계정의 동쪽에 이른 물줄기는 깎아지른 몇 겹의 바위를 두르는데, 그 바위는 병풍처럼 높이 솟아 있다. 이로 인해 남아 있는 물줄기의 기세가 수면에 평평하게 펴지다가, 수심이 깊은 곳에 이르면 우묵하게 패여서 소용돌이를 이룬다. 우묵하게 패인 지점을 가득 채운 물줄기는 금호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즉 동계가 대암에서 시작하여, 동계정을 거쳐서 금호강으로 합류한다는 것이다. 한편 최주진과 교유한 인물 중에 류규가 있었는데, 류규는 최흥원과도 교유했다. 이 때문에 류동준이 <동계정기>에서 최주진의 행적과 최흥원의 학덕을 기리면서, 자신의 5대조인 류규를 떠올린 것으로 보인다.
출처
nl.go.kr
키워드
최주진(崔周鎭)(동계(東溪))최흥원(崔興遠)(백불암(百弗庵))대암(臺巖)칠계(漆溪)(옻골)
소장정보
국립중앙도서관, 국립경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 등
기타
歲屠維單閼上元節 後學豊山柳東濬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