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
최주진이 광촌에서 숙박하면서 지은 시로, 강학한 후에 북계정사에서 돌아오던 길에 보았던 경치를 읊었다. 최주진은 이 시를 정자에 있는 족숙들에게 보내어, 이 시의 화운시를 지어 주길 청했다. 시의 형식은 칠언절구이며 1제 2수로 이루어져 있다. 최주진은 자가 공보(慶州), 호가 동계(東溪)·동계처사(東溪處士), 본관이 경주이다.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의 아들이다. 한편 북계는 최동집과 관련이 있는 장소이다. 최동집은 자가 진중(鎭仲), 호가 대암(臺巖)으로, 최주진의 6대조이다. 1644년(인조 22)에 명나라가 멸망하자 팔공산 부인동(夫仁洞)(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으로 들어가서 농연 위에 농연정을 짓고 평생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최동집의 사후 1750년(영조 26) 봄에 최흥원이 농연 위에 북계정사를 마련했다.
출처
nl.go.kr
키워드
북계정사광촌(廣村)
소장정보
국립중앙도서관, 국립경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