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誰憐爲客久。滿月又經旬。巷稚顔初熟。隣翁別更新。來從松逕雪。歸帶杏花春。淑氣江頭路。沴滲詎復臻。
해제
하시찬이 1793년(정조 17) 음력 2월 30일에 부강정(강정)의 봄날 경치를 읊은 시이다. 시의 제목에 나오는 ‘晦日’은 그믐날로, 음력으로 그달의 마지막 날을 뜻한다. 시의 형식은 오언율시이며 1제 1수로 이루어져 있다. 하시찬은 자가 경양(景襄), 호가 열암(悅菴), 본관이 달성이다. 하운서(夏雲瑞)의 5대손이자 하점우(夏霑雨, 1630~?)의 고손자이다. 그리고 인촌 우재악(1734~1814)과 경호·명성당 이의조(1727~1805), 심재·성담 송환기(1728~1807)의 제자이다. 청년기부터 중년기까지 가난함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786년(정조 10)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었고, 향촌에서 학문에 힘썼다. 1789년(정조 13)에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의 선산 아래에 독무암서(獨茂巖棲)를 짓고 공부하며 제자를 길렀다.
강정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었던 정자이다. 신라 시대에 왕이 직접 이곳을 유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시의 7구에 ‘江頭’가 나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강정의 근처에 나루가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이 시를 지을 당시에 하시찬은 승현(蠅峴, 팔현)에서 임시로 강정으로 옮겨 가서 몸을 부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승현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이다. 하시찬이 강정으로 옮겨 간 시기는 겨울로 보인다. 강정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살면서 겨울을 나고 봄을 맞이한 것이다. 봄이 오면서 강가의 나루와 길에 화창하고 맑은 기운이 감돈다. 이를 본 하시찬은 악한 기운이 어찌 다시 스며들겠냐고 묻는데, 결국 이것은 하시찬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왔듯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끝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불행이란 다른 곳에서 임시로 몸을 부쳐 사는 상황을 의미한다.
출처
db.itkc.or.kr/inLink?DCI=ITKC_MO_1129A_0020_010_0660_2013_B102_XML
키워드
부강정(강정)금호강(琴湖江)낙동강(洛東江)나루[江頭]강창(江倉)
소장정보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학술정보원,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한동대학교 도서관, 호서대학교 중앙도서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