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이미지
해제
이춘섭이 1787년(정조 11) 음력 4월 어느 날에 연경서원 뒤편에 있는 재[後峴]에서 읊은 시이다. 높은 산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느낀 기분을 표현하면서, 팔공산 유람에 참석한 사람들과 담소하며 교유하는 즐거움을 표현했다. 시의 형식은 오언절구이며 1제 1수로 이루어져 있다. 이춘섭은 자가 자정(子正), 호가 경소재(景蘇齋)·천서와(川西窩), 본관이 인천이다. 이영태(李英泰)의 증손자이자 만오당·관어정 이인제(1685~1761)의 손자이며, 취몽헌 이양채(1714~1796)의 아들이다. 그리고 서광수(徐廣修)·조덕행(趙德行)·금와 구광한(1736~1774) 등과 교유했다. 스승의 가르침이나 감독 없이 스스로 백가의 서적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과거 공부를 하여, 과거에서 시험을 보던 문체로 글을 잘 지었다. 연경서원은 대구 지역 최초의 서원으로, 퇴계 이황(1501~1570)·한강 정구(1543~1620)·우복 정경세(1563~1633)·계동 전경창(1532~1585)·매암 이숙량(1519~1592)을 배향했다. 1565년(명종 20)에 창건되었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2년(선조 35)에 중건되었다. 1660년(현종 1)에 사액되었으나, 1871년(고종 8)에 흥선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 이춘섭은 이 시를 지을 당시에 지역의 선비들 및 친구들 19명과 팔공산을 유람하던 중이었고, 직전에 화암을 다녀왔다. 연경서원의 서쪽에 화암이 있었고, 연경서원의 북쪽에 성도산(成道山)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시의 제목에 나오는 재[後峴]는 성도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시를 비롯하여, 정미년(1787, 정조 11) 음력 4월의 팔공산 유람 과정에서 지은 시들 여러 편이 『경소재집』 권1에 이어서 실려 있다.
출처
nl.go.kr
키워드
연경서원성도산(成道山)지촌(智村)(지묘동)팔공산(공산)
소장정보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경기대학교 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등
기타
李春燮, <丁未四月。與鄕道士友十九員。作八公山遊賞之行路。過花潭>, 「詩」, 『景蘇齋集』 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