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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公山奇蹟石㙜留。劫雨藍風閱幾秋。仙子植松松已老。佳名惟屬少年遊。(右少年㙜) 白雲深處石爲橋。到此飄然俗慮消。渡盡淸溪人不見。松壇何處弄仙簫。(右訪隱橋) 寺古千年塔不移。碧梧棲老鳳凰枝。漕溪日暮踈鍾起。夢裡同參笁國師。(右桐華寺) 廣石㙜前隱小菴。山嫌俗客故垂嵐。居僧入定千峯靜。夜永燈明繡佛龕。(右念佛菴) 麗祖何年石上來。秪今傳作一人㙜。頑然與世無情意。閱盡興亡獨不頹。(右一人石) 畫幛連雲拱列仙。小菴如掛絶塵緣。登臨半日疑蟬蛻。眼界貫通萬里天。(右三省菴) 層層疊石逈超塵。五老雲㙜堪作隣。何日眞仙經過去。至今疑惑世間人。(右仙人㙜) 古洞深深水石奇。宛看神禹鑿山時。羣魚點額前程濶。澗雨和雲處處隨。(右龍門洞)
해제
하시찬이 팔공산의 여덟 가지 경치를 읊은 시로, 소년대(少年臺), 방은교(訪隱橋), 동화사(桐華寺), 염불암(念佛菴), 일인석(一人石), 삼성암(三省菴), 선인대(仙人臺), 용문동(龍門洞)을 이른다. 시의 형식은 칠언절구이며 1제 8수로 이루어져 있다. 하시찬은 1786년(정조 10) 음력 윤달 7월 19일에 전군문(全君文)·전백보(全伯甫)·전철보(全喆甫)·전홍윤(全弘允)·하회응(夏會應)·도사능(都士能)·우장중(禹張仲)·배안백(裴安伯)·배주경(裵籌卿) 등과 팔공산 삼성암을 유람했다. 당시 유람에 참석했던 인원은 9명이었다. 유람 일행은 금호강을 건너 지저동(抵枝洞)을 지나 전귀당(全歸堂)에서 숙박했다. 다음날 용암(龍巖)·동수(桐藪)를 경유하여 삼성암(三省菴)에 도착했고, 삼성암에서 선인대(仙人臺)와 오도암(五道菴)을 보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부인사(夫人寺)에서 숙박했다. 그다음 날은 비에 막혀서 파계사(把溪寺)에서 체류했다. 하시찬은 이 당시에 유람하면서 보았던 경치들을 소재로 이 시를 지었다. 하시찬은 자가 경양(景襄), 호가 열암(悅菴), 본관이 달성이다. 하운서(夏雲瑞)의 5대손이자 하점우(夏霑雨, 1630~?)의 고손자이다. 그리고 인촌 우재악(1734~1814)과 경호·명성당 이의조(1727~1805), 심재·성담 송환기(1728~1807)의 제자이다. 청년기부터 중년기까지 가난함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786년(정조 10)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었고, 향촌에서 학문에 힘썼다. 1789년(정조 13)에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의 선산 아래에 독무암서(獨茂巖棲)를 짓고 공부하며 제자를 길렀다.
출처
db.itkc.or.kr/inLink?DCI=ITKC_MO_1129A_0020_010_0450_2013_B102_XML
키워드
동화사(桐華寺)염불암(念佛菴)삼성암(三省菴)선인대(仙人臺)용문동(龍門洞)
소장정보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학술정보원,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한동대학교 도서관, 호서대학교 중앙도서관 등
기타
夏時贊, <三省菴同遊序(丙午閏七月)>, 「序」, 『悅菴集』 卷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