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
최흥립이 파계사 백화루에서 최흥중(崔興中)을 보내면서 지은 시이다. 파계사의 경치를 읊으면서, 최흥중과 이별하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시의 형식은 칠언율시이며 1제 1수로 이루어져 있다. 최흥립은 자가 산보(山甫), 호가 천옹(喘翁), 본관이 경주이다. 초명이 흥교(興敎)이다.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당내 사람들과 백일계(百一契)를 조직하여, 백세(百世) 흘러가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변치 말자는 뜻을 표방하여 화목을 도모했다. 최흥중은 자가 용삼(用三), 본관이 경주로, 최흥립의 족제이다. 최흥립과 최흥중은 1786년(정조 10) 음력 4월 12~15일에 벗들과 팔공산 일대를 유람했고, 그 과정에서 파계사를 구경했다. 그리고 최흥립은 이 당시의 팔공산 유람을 <유공산기(遊公山記)>로 기록했다. 파계사는 동화사의 말사로 804년(신라 애장왕 5)에 심지 왕사가 창건했다. 팔공산에 있다. 백화루는 파계사 경내에 있는 누각이다.
출처
nl.go.kr
키워드
파계사(把溪寺)백화루(百花樓)팔공산(八公山)(공산(公山))세심(洗心)최흥중(崔興中)
소장정보
국립중앙도서관,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대구가톨릭대학교 중앙도서관,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영남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등
기타
<유공산기(遊公山記)>(최흥립, 「기(記)」, 『천옹집(喘翁集)』 권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