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無主山爲有主山。居然構得屋三間。今來不勝追先感。風月多年幾任閒。
해제
최흥원이 북계정사에서 잘 때, 최동집(1586~1661)을 추모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이다. 시의 형식은 칠언절구이며 1제 1수로 이루어져 있다. 최흥원은 자가 태초(太初)·여호(汝浩), 호가 백불암(百弗菴)·칠계(漆溪), 본관이 경주이다. 1722년(경종 2)에 향시 생원 초시에 합격했으나, 1729년(영조 5)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에 은거했다. 1739년(영조 15)에 팔공산 농연의 부인동에 들어가 부인동 동약을 만들었고 선공고(先公庫)·휼빈고(恤貧庫)를 설치했다. 이후에 팔공산 아래에 북계정사와 농연정을 세워, 이곳에서 은거하고 공부하며 제자들을 길렀다. 북계정사는 1750년(영조 26)에 농연 위에 지어졌다. 최동집은 자가 진중(鎭仲), 호가 대암(臺巖)이다. 최흥원의 5대조로, 1644년(인조 22)에 명나라가 멸망하자 팔공산 부인동(夫仁洞)(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으로 들어가서 농연 위에 농연정을 짓고 평생 동안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출처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523A_0010_010_0440_2005_A222_XML
키워드
북계(北溪)농연(聾淵)공산(公山)(팔공산)최동집(崔東㠍)(대암(臺巖))
소장정보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835),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