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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최주진이 농연 위에 농연서당을 중건했음을 알리는 제사를 지낼 때 지은 글이다. 먼저 농연서당 주변의 경치를 읊은 다음, 농연서당을 짓게 된 경위를 이야기했다. 이어서 선조의 은혜와 보우 덕분에 농연서당을 중건하게 되었으며, 자손으로서 선조의 유업을 기리고 이어 가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과일과 술을 차려서 올린다고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최주진은 자가 공보(慶州), 호가 동계(東溪)·동계처사(東溪處士), 본관이 경주이다. 백불암 최흥원(1705~1786)의 아들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칠계)에 있던 ‘동계’를 자신의 호로 삼아, 동계 가에 집을 짓고 은거했다. 한편 농연서당은 최동집(1586~1661)의 농연정에서 유래했다. 최동집은 자가 진중(鎭仲), 호가 대암(臺巖)으로, 최주진의 6대조이다. 1644년(인조 22)에 명나라가 멸망하자 팔공산 부인동(夫仁洞)(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으로 들어가서 농연 위에 농연정을 짓고 평생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최동집의 사후 1750년(영조 26) 봄에 최흥원이 농연 위에 북계정사를 마련했다가, 1755년(영조 31)에 농연정의 유허지에 농연서당을 중건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최주진이 추모한 선조는 최동집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글에서는 지난날에 시내의 오른쪽에 띳집과 들보를 얽어 두었다가, 선대의 유허지로 나아가 옛 제도를 회복했다고 서술한다[昨於溪右 先構茅樑 今就遺址 將復舊制]. 여기서 띳집과 들보는 북계정사를, 회복한 옛 제도는 농연서당 중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최흥원이 북계정사를 마련했던 곳은 농연정 유허지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이었던 듯하다. 그 후 최흥원과 그 일족들이 힘써서 농연정의 유허지에 농연서당을 중건한 것이다.
출처
nl.go.kr
키워드
팔공산(八公山)부인동(夫仁洞)분암(粉巖)농연서당(聾淵書堂)(농연정)최동집(崔東鏶)(대암(臺巖))
소장정보
국립중앙도서관, 국립경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도서관 등
기타
李象靖, <聾淵書堂記(丙戌)>, 「記」, 『大山集』 권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