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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先祖幽居地。草廬起數間。悠然成晩趣。世念百無關。 依舊巖泉色。森然照我罇。岳靈能識否。吾是主人孫。 溪山風物好。春鳥度斜暉。恐有倚閭望。呼僮策馬歸。
해제
최흥원이 최흥건(1712~1769)의 <공산하농연。시아선조대암공축정유지。백형구유긍구지지。이력면미능。세경오춘。선립수간초옥어유지상일리허。모춘지초。백중양형。약일이족인。휴주소요호기중。이흥건병부득수。기후。음5언3절,7언2절。이견지인정우양형(公山下聾淵。是我先祖臺巖公築亭遺址。伯兄久有肯構之志。而力綿未能。歲庚午春。先立數間草屋於遺址上一里許。暮春之初。伯仲兩兄。約一二族人。携酒逍遙乎其中。而興建病不得隨。其後。吟五言三絶,七言二絶。以見志因呈于兩兄)>에 차운하여, 북계의 경치를 읊은 시이다. 시의 형식은 오언절구이며 1제 3수로 이루어져 있다. 최흥원은 자가 태초(太初)·여호(汝浩), 호가 백불암(百弗菴)·칠계(漆溪), 본관이 경주이다. 1722년(경종 2)에 향시 생원 초시에 합격했으나, 1729년(영조 5)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에 은거했다. 1739년(영조 15)에 팔공산 농연의 부인동에 들어가 부인동 동약을 만들었고 선공고(先公庫)·휼빈고(恤貧庫)를 설치했다. 이후에 팔공산 아래에 북계정사와 농연정을 세워, 이곳에서 은거하고 공부하며 제자들을 길렀다. 북계정사는 1750년(영조 26)에 농연 위에 지어졌다. 최흥건은 최흥원의 동생으로, 자가 입부(立夫), 호가 육육와(陸陸窩)·육와(陸窩)이다.
출처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523A_0010_010_0420_2005_A222_XML
키워드
북계(北溪)농연(聾淵)공산(公山)(팔공산)최흥건(崔興建)
소장정보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835),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