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身世徒然一草廬。意中惟有古琴書。何時出此塵窠外。走入公山水石居。
해제
최흥원이 밤에 혼자서 은거 생활과 분암을 생각하며 읊은 시이다. 시의 형식은 칠언절구이며 1제 1수로 이루어져 있다. 최흥원은 자가 태초(太初)·여호(汝浩), 호가 백불암(百弗菴)·칠계(漆溪), 본관이 경주이다. 1722년(경종 2)에 향시 생원 초시에 합격했으나, 1729년(영조 5)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에 은거했다. 1739년(영조 15)에 팔공산 농연의 부인동에 들어가 부인동 동약을 만들었고 선공고(先公庫)·휼빈고(恤貧庫)를 설치했다. 이후에 팔공산 아래에 북계정사와 농연정을 세워, 이곳에서 은거하고 공부하며 제자들을 길렀다. 분암은 농연정의 근처에 있는 바위이다.
출처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523A_0010_010_0380_2005_A222_XML
키워드
분암(粉巖)농연정(농연서당(聾淵書堂))
소장정보
국립중앙도서관(한46-가835),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